2021. 5. 2. 09:12ㆍ영화, 드라마
영화 1987은 1987년 6월 항쟁의 배경을 다루고 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부터 6월10일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9일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사건까지 다루고 있는데요, 영화의 내용과 간략히 감상후기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줄거리
영화는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과 안기부는 박종철 열사가 심신미약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식으로 이를 은폐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가리려고 해도 가려질 수 없는 진실이 있는듯 검사, 부검을 진행한 의사, 면회를 지켜보던 교도관, 끈질기게 취재하는 기자 등을 통해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시민들과 학생들은 분노합니다. 당시 이미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선언으로 민심은 들끓었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여기에 불을 지핀 셈입니다. 여기에 6월10일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감상후기
- 개인들의 역할과 연대
영화를 보고나면 기존 상업영화와 많이 다르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1987년 민주항쟁과 민주화를 이끌었던 시민들에 바치는 헌정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요소들이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켰는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하더라도 많은 영화들은 그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극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주인공을 설정하고 주인공과 얽힌 이야기들을 잘 조직해 하나의 완성된 드라마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뚜렷한 한 명의 주인공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조연인듯 하면서 주연인 인물처럼 보여집니다. 심지어 국내의 최고라고 불릴만한 배우들이 등장함에도 누구 한 사람의 영웅화, '원맨쇼'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의 조연이자 주연인 인물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영화는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드라마를 보여줍니다. 극 초반에 검사는 화장 동의서에 끝내 싸인을 거부합니다. 법에 어긋난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부검 후에 화장을 하도록 서류를 작성합니다. 또한 사건을 은폐하려는 안기부의 압력을 약화시키기위해 어느 기자에게 슬쩍 고문치사사실을 흘리기도 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어느 교도관이 면회 내용을 끝내 기록하여 외부에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안기부는 박종철을 직접 고문했던 경찰들을 처벌하여 꼬리자르기를 시도합니다. 고문치사혐의로 구속된 경찰들은 교도소에서 면회 도중 고문을 하다 죽이게 되었다는 내용의 말을 합니다. 공식적으로 경찰과 안기부는 박종철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기에 구속된 경찰이 이와 같은 진술을 한 것은 중요한 정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도관은 면회중 진술내용을 속기록하는 일을 했는데, 한 교도관은 속기록을 못하게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내용을 적어 정보를 외부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학생들은 그런 사실들을 기습 시위 등의 방법을 통해 퍼뜨리고 시위규모를 점점 키워가죠. 그렇게 그들은 여론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해냅니다.
영화는 6월 민주항쟁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개인들, 민초들의 힘과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듯 합니다. 그런 개인들이 하나씩 연결되면서 박종철 고문치사에 대한 진실이 점점 드러나고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그렇게 역사를 충실히 살았던 개인들에 바치는 헌정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 비둘기의 의미
극중 김태리의 역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유퀴즈>의 어느 편을 보니 김태리 역에 해당하는 실존 인물도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각색하는 과정에서 감독의 생각이 담겼을 것 같아 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극중에서 김태리는 민주화 운동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삼촌이 민주화 유력 인사와 연결되어 위험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만류하기도 했죠. 그러다 독재 권력으로 인해 삼촌이 잡혀가고 가정이 파탄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김태리는 아무 잘못 없는 우리 엄마를 왜 때리냐는 대사를 남깁니다. 당시 잘못된 권력으로 인해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억울하게 피해를 볼 수 있었던 한 시민의 목소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을 한 김태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듯 어느새 시위대 버스 위로 올라갑니다. 남 좋은 일, 쓸데 없는 정의감처럼 보였던 일이 어느새 자기 일로 다가오고 자기 목소리를 냈던 것이죠. 당시 민주화운동은 잘못된 권력이 억울함을 양산하는 현실을 절감했던 민중들의 목소리가 분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악역 김윤석과 박희수
김윤석(대공수사처장 역)과 박희수(고문경찰 역)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열중합니다. 소위 '빨갱이'를 색출해내고 그들의 관계를 엮어 시위 주동자들을 몰살하려고 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악에 바친 사람들로 만들었을까요. 김윤석은 북한이 고향인 인물인데, 과거 사회주의자들로 인해 가정이 풍비박산 났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그런 분노가 시민들을 향했던 것이죠. 그는 시민들을 빨갱이(사회주의자)로 몰아 없애고자 하는 욕망에 휩싸입니다. 박희수는 그런 과정에서 고문 역할에 충실했던 경찰이었던 것이죠. 이들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선량한 개인들의 적입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이들도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더 큰 권력자들에 의해 이들도 결국 꼬리자르기로 잘려 나갑니다. 잘못된 복종과 허황된 분노는 결국 더 큰 권력자에 의해 버림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악역 설정은 더 큰 권력, 더 큰 악의 존재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들도 권력에 이용당하는 존재였다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김윤석이 맡은 인물은 또 다른 메세지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미쳐 날뛰는 권력을 향해 분노하고 누군가는 권력을 향한 분노에 대해 분노합니다. 사실 김윤석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겪었던 아픔에 의해 분노하지만 그의 분노가 사회주의자들을 향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그는 선량한 시민을 사회주의자로 매도할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자신이 조작했던 자료들을 불태우는 장면에서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행위가 조작에 불과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 감정에 휩싸여 더 큰 문제를 직시하지 못했고 올바른 방향으로 분노하지 못했습니다. 엇나간 분노는 결국 최후에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역사에서도 버려지게 되겠죠. 역사는 그렇게 올바른 방향으로 분노했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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