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6. 12:03ㆍ신문읽기/사회
2020년 6월. <시사인>과 KBS가 공동기획한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총 3부로 기획된 기사다. 이중 1부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
이때와 달리 지금은 방역정치에 대한 불만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한국은 세계적 기준으로 볼 때 방역에 성공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방역 과정에서 정부가 했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방역성공에 가장 큰 요인은 국민들의 적극적 참여라고 본다.
한국인들은 방역에 실패한 미국, 유럽과 어떻게 달랐던 것일까?
2020년 6월에 있었던 이 조사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귀한 자료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자유와 권위의 조화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획동기
당시는 한국의 방역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던 시기였다. 국내외에서 이에 부정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이 기획은 한국에 코로나19 방역성공으로부터 한국인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정부가 잘해서인가를 묻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은 세계 다른 나라들, 특히 미국과 유럽같은 서구인들과 무엇이 다르기에 방역성공에 기여할 수 있었는지를 묻는다.
즉, 코로나19에서 나타난 '한국인'을 조사한 기획물이다.
조사를 시작하며 이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한국인들은 개방적·수평적이어서 성공했나, 순응적·수직적이어서 성공했나? 한국 모델은 중국 모델의 반대편에 있나, 중국 모델의 옆에 있나?"
그리고 이 핵심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방역 참여 태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 가능한 변수를 최대한 많이 검토했다. 권위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중 누가 더 방역에 적극 참여할까? 개인주의자와 집단주의자는? 정치 성향상 우파와 좌파는? 순응적 성향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은?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도우려 하는 성향과 그렇지 않은 성향은?"
|정부에 순응하는 성향(권위주의, 집단주의)이 방역 성공의 요인일까?
유럽의 많은 지식인, 전문가들은 한국의 방역성공을 권위주의적인 동아시아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 문화와 달리 한국, 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는 집단, 권위에 순응하는 성향이 강해 정부지침을 잘 따를 수 있었고 이것이 방역성공의 요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사에서는 이런 추측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조사는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방역지침 준수 정도를 살펴보았다.
<표1>에서 보듯, 사람들의 성향을 총 5가지로 나누어 조사했다. 상, 중, 하는 각 성향이 강한 정도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 '상'은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을 가리킨다.
막대그래프 위의 점수는 방역참여점수다.
권위주의, 순응지향, 집단주의 성향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성향을 상중하로 나누어 방역참여점수를 측정한 결과가 윗편의 그래프다. 상중하의 점수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
이에 따르면, 권위주의적 성향의 정도가 방역참여에 영향을 주는 큰 요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순응지향, 집단주의 성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민주적 시민성, 수평적 개인주의 성향을 기준으로 볼 때는 상중하(성향의 강도)의 점수차이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난다.
민주적 시민성, 수평적 개인주의가 방역참여의 적극성과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민주적 시민은 누구인가?
'민주적 시민'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모호하다.
이 조사에서는 다음 7개의 질문에 대해 강한 긍정을 보인 사람들을 민주적 시민성이 강한 사람들로 분류했다.
1. 선거 때 항상 투표한다.
2. 법과 규칙을 항상 잘 지킨다.
3. 정부가 하는 일을 늘 지켜본다.
4. 사회단체나 정치단체에서 적극 활동한다.
5.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6. 조금 비싸더라도 정치, 윤리, 환경에 좋은 상품을 선택한다.
7. 나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돕는다.
정리하면 민주적 시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개인이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좋은 공동체 안에서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강하게 의무감을 느끼므로, 자신처럼 하지 않는 동료 시민들을 무임승차자라고 싫어하는 성향도 강하다. 그러니 마냥 이타적인 시민과도 다르다."
이들을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2번과 6번을 보면 권위주의적, 집단주의적이기도 하다. 반면, 3번과 5번은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즉, 민주적 시민은 권위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양대 축으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성향의 사람들이다.
이 조사에서는 이런 점에 주목하여 다음 조사를 진행한다.
|코로나19에 걸리는 것이 두렵다. 왜?
출처: 시사IN |
이 기사에서는 이 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코로나19 국면에는 대단히 독특한 합의가 존재한다. 코로나19는 치명률은 높지 않은 반면 전파력은 대단히 강해서, 개인 건강보다 사회관계에 끼치는 파괴력이 더 크게 느껴진다. 감염을 조심해야 하는 핵심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이고,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해서 코로나19 방역이란 질병을 회피하거나 건강을 염려하는 태도보다도, 공공재를 함께 만들어가는 싸움에 더 가까워진다. 민주적 시민성이 강할수록 방역 참여에 적극적인 이유가 여기서 확인된다.
공동의 목표를 앞에 두고 함께 싸워나가는 경험, 공동체에 중요한 일에 참여하는 경험은 사람들의 마음을 고양시킨다. 극단적인 사례는 전쟁이다. 전시에 사람들이 들뜨고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힘은 널리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방역전에서 시민들은 전시 고양감을 저강도로 경험하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방역 참여를 이례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방역 지침을 내가 잘 지킨다고 응답한 비율은 96%, 우리나라 국민이 잘 지킨다고 응답한 비율은 82%다. 일종의 ‘전우애’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60%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보다도 남에게 피해를 끼칠까를 더 두려워한다. 감염 자체도 두렵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자는 남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받는 비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저런 수치가 나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알기 위해서는 별도의 질문과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위의 조사결과만을 가지고 그런 특징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위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에 대해 민감하다. 또한 방역 규범을 지키지 않아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 성향이 강하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방역 전쟁은 나를 지키고 그럼으로써 타인을 지키기 위한 싸움과도 같아 보인다. 그런 싸움에서 한국인들은 규칙을 서로 잘 지키고 있다고 본다.
'한국인'들에게 방역은 '나' 보다도 나를 포함한 '공동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뢰회복
이 조사에서는 '신뢰'에 관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정치, 공공기관, 국회, 복지제도 등에 대한 신뢰를 묻는 질문이다.
요약하자면,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며 정부와 공공기관, 공공제도 및 복지제도 등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는 '추상적' 국민들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것이다.
반면, 낯선 사람이라는 '구체적' 국민들에 대한 신뢰는 낮아졌다. 전염병에 의한 특수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야당, 언론, 종교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졌다.
이때의 수치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일단, 확진자 수치가 상당히 증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상당한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고 이로 인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편이지만 의료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갔고 사망자도 크게 늘었다.
정부가 병상확보를 비롯한 겨울철 집단감영 대비에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지금에 이 조사와 기사를 다루는 이유는 코로나19를 통해 나타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을 진단하는 과정이 전제될 때 비로소 이후를 기획할 수 있다.
기사 말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주적 시민성이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는 좋은 시민’을 뜻한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공동체’의 폭과 깊이다. 이 공동체는 넓어지고 있는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우리끼리의 결속’을 다지는 것은 아닌가? 깊이는 깊어지고 있는가? 감염병 특유의, 낯선 사람을 밀어내려는 힘과 민주적 시민성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이런 복잡한 질문들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코로나19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아직 말할 수 없다."
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165
다음 포스팅에서는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갈림길에 선 한국 편>을 다루려 한다.
코로나19 이후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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